[책]한강, 내 여자의 열매, 여수의 사랑
- 한강 작가의 아직 안 읽은 책 중에서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까 하다가 유투브 방송을 봤는데 내 여자의 열매를 추천하는 것을 봤다. 그래서 주문했다. 주문하면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여수의 사랑도 같이 주문했다. 이북이 없어서 종이책으로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문학과지성사는 이북 안 만드나? 왜?
- 결론부터 말하면 난 여수의 사랑 쪽이 더 좋았다. 여수의 사랑이 첫번째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가 두 번째 소설집이다. 둘 다 한강 작가의 초기작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 읽은 순서는 내 여자의 열매를 먼저 읽고, 여수의 사랑을 니중에 읽었다. 그래서 내가 여수의 사랑이 더 좋다고 느끼는 이유가 한강 작가의 글에 더 익숙해져서 좋다고 느끼는 것인지, 여수의 사랑에 있는 글들이 더 내 취향이어서인지 모호하긴 하다. 아무튼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 우리나라 노벨문학상 작가인데 내가 감히 평가하긴 그렇지만 내 취향에 대한 후기니까 내 블로그에 쓰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하면서 함부로 말해보자면 내 여자의 열매 소설집을 읽을 때는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좀 지루하기도 하고. 20대 초반에 한참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었었는데 거기서 많이 보던 스타일의 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내 여자의 열매를 추천해준 유투브에서 아홉 개의 이야기 얘기를 했는데 나는 그분들이 느낀 것을 전혀 못 느끼겠더라. 내가 한강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서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 아무튼 내 여자의 열매를 좀 지루하게 끝내고 여수의 사랑을 읽을까 말까 고민을 잠시 하다가 읽기 시작했는데 이쪽은 또 내 취향이었다. 제일 좋았던(?) 작품은 어둠의 사육제였다.
- 요즘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다보면 한강 작가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는데 다른 사람들의 감상에서 내가 왜 한강 작가 책을 취향이 아니라면서도 계속 읽나를 알게 되었다.
- 이 사람 얘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긴 한데 김기덕 영화를 좋아했었다. 어떤 영화는 너무 취향이 아니어서 불편하기만 했지만 어떤 영화는 불편한데 내가 모르던 세계, 내가 생각조차 못하던 관점 등 신선함(새로움? 각성?)을 던져주었다. 잔인한데 아름다운 기이한 느낌을 주기도 했고. 누군가가 한강에게서 김기덕 느낌을 받는다고 했는데 아! 그렇구나 했다.
- 그 생각을 하고 봤더니 한강의 표현들이 섬뜩한 것이 많더라. 물론 김기덕처럼 잔인하지 않지만 "깨어진 술병 조각 같은 햇살"(어둠의 사육제) 이런 표현들이 있고 그 표현의 뒷부분을 보면 왜 그 묘사여야 하는지 수긍이 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 한강 책을 두 번 읽게 된다면 저런 표현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올 것 같다. 이 장소를 이렇게 묘사한다고? 이 장면을 이런 식으로? 하는 신선함(불편함?)이 뒤로 갈수록 더 눈에 들어왔다.
- 어둠의 사육제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다카야마 마코토의 에고이스트 생각이 나서다. 올해 읽은 책 중에 나를 제일 펑펑 울게 했던 책이다. 지금도 가끔 그 책 내용을 생각하며 울컥해질 때가 있다. 에고이스트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이 주인공이었다면 어둠의 사육제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방식이 긴장감을 주었다. 한강 작가의 글을 보면 한국인이라면 알듯한 전개인데 그 서사를 알려주는 방식에 긴장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전체 줄거리를 놓고 보면 어디에선가 들었을 수도 있는 안타까운 삶의 이야기 뭐 그런 것인데 그 내용을 알려주는 방식에 긴장감을 갖게 한다. 그게 작가의 힘이겠지? 소년이온다부터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읽을 때는 작가의 이런 특징을 몰랐는데 계속 읽다보니 작가의 특징도, 표현도 눈에 들어오긴 한다. 다음에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으면 첫번째와 많이 다른 느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내가 한강 책을 읽은 순서는 '소년이 온다' - '흰' - '작별하지 않는다' - '채식주의자' - '내 여자의 열매' - '여수의 사랑'이다.
- 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여수의 사랑'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단편소설들이라서 읽기 힘들지 않을 것 같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별로 없었던 것 같고.
- 왜 노벨문학상을 받았는가가 궁금하다면 '소년이 온다'가 좋을 것 같다. '작별하지 않는다'보다는 '소년이 온다'가 더 읽기 쉽기도 하고 내용도 더 대중적이지 않나 싶다.
- 파격적인 것에 관대하다면 '채식주의자'도 읽어볼 만 하다. 불편하긴 하겠지만 내 여자의 열매 보다는 채식주의자가 더 재밌지(?) 않나 싶다. 상 받은 책인데 상 받을 만한 것 같다고 느꼈다.
- 엇! 인터넷 서점 표지에는 노벨문학상 띠지 같은 게 있네.
- 하지만 내가 받은 책에는 없다. 너무 급하게 찍어내서 못 넣은 건가?
- 그리고 "노벨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게 끝이다. 여러 상을 나열하고 노벨문학상 다섯 글자만 추가되어서 쿨하네 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새로 할 시간이 없이 인쇄에만 집중해서일지도 모르겠다.
### 어둠의 사육제, 139
깨어진 술병 조각 같은 햇살이 아파트 광장 가득 번득이며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