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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거리/책 읽기

[책] 코뿔소, 외젠 이오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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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 422
외젠 이오네스코 저자(글) · 박형섭 번역
민음사 · 2023년 08월 15일

 

- 희곡 형식이 내 취향은 아니었다.

- 하지만 이런 정치적 의미가 내포된 내용은 좋아한다. 소설이었으면 나에겐 더 재밌었을 것 같다.

- 해설을 읽고 나니 책의 의미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었다.

 

# <코뿔소>에 대한 해설 중에서

- 147쪽

... 1933년 이후 루마니아는 온통 파시즘의 물결로 뒤덮이게 되었다. 청년 이오네스코는 나치 이데올로기에 협력하는 아버지와 동료들과의 불화를 겪으며 끝내 프랑스로 귀환한다. 

 

- 149쪽

... 그 시대적 상황은 수많은 지식인들로 하여금 코뿔소로 상징되는 어떤 힘의 이데올로기에 마취되도록 유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데올로기의 공격성과 전염성.집단성에 무기력하게 방조 혹은 참여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신의 정신을 포기했던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비인간적인 폭력에 별 저항 없이 추종하여 집단의 익명에 가담하는 비인간성, 혹은 거기에 동참하여 스스로 그 세계에 안주하는 아류들을 고발한다.

 

- 151쪽

   그는 이미 코뿔소의 세계에 입문하기 앞서 독단에 가까운 고정 관념에 빠져 있었다. 가령 현실에 적응하는 방법으로 "동시대 문학과 문화적 사건들에 정통하는 것"이 중요하며, 박물관에 가거나 강연회에 참석하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다. 그러면 고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누구든지 문화인 혹은 지성인이 되어 두려움도 불안도 떨쳐 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동시대적 분위기에 쉽게 추종함으로써 어떤 외적 변화나 유행에서도 낙오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사고 방식대로라면 불의와 폭력, 광적 이데올로기가 난무해도 거기에 합류함으로써 어렵지 않게 안주할 수 있을 것이다.



- 152쪽

   그의 정신은 지성인에 가까우며 화이트칼라를 대표한다. 그의 명쾌한 논리는 코뿔소의 출현을 직접 확인하자마자 돌변한다. 태도는 횡설수설하는 말과 함께 일관성을 상실한다. 마치 사이비 언론이 진실을 은폐할 때 사용하는 수법처럼, 그리고 자신이 앞장서서 현실을 인정하고 세상이 바뀌어야 함을 역설한다. 그의 주장과 발언은 언제나 시류에 편승하며, 오직 유리한 상황만을 추종하는 바람과 같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타르처럼 살아갈까.



... 바로 기회주의 지식인의 전형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뒤다르의 이러한 측면을 풍자함으로써 나약한 지성의 태도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즉 뒤다르는 중립을 지키며, 언제나 검토와 유보의 자세로 안전한 거리에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본다. 즉 코뿔소를 그냥 조용히 내버려둘 것을 권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국의 일이니 당국에 맡겨두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라고 말한다. 지식인의 우유부단과 비겁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그는 회의주의에 빠져 모든 것을 잃는다. '모든 것은 논리적이다. 이해하는 것, 그것은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남기고 떠난다. 모든 것이 논리적이란 주장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파시스트나 그 아류들이 즐겨 사용하는 논법이다.



- 154쪽

    우선 이 작품은 역사적 의미를 띠고 있다. 20세기 인류를 위협했던 정치적.종교적 광신, 나치즘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이오네스코는 "희곡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어떤 집단의 정신적 변질에 동참하도록 하는 전염병에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의 정신적 혼란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나치화 과정"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전염병이란 당연히 코뿔소병을 말하며, 그것은 곧 나치즘을 상징한다. 나치즘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기에 동조하거나, 심지어는 그것을 찬양.고무하며 세력의 확장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데지의 감동적인 찬양, 보타르와 뒤다르의 무기력한 동조, 베랑제의 공포에 사라잡힘, 장의 우월한 인간에 대한 역설 등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나 <코뿔소>는 역사성을 초월하는 의미도 갖는다. 코뿔소 바이러스는 단지 나치즘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작가는 여기서 집단적 히스테리의 근간이 되는 이데올로기의 공격을 풍자한다. 이데올로기란 특정한 계급의 이익을 표현하며, 또 그에 상응하는 행동이나 규범.가치관을 포괄하는 사회.정치.경제.철학적 견해의 체계를 일컫는다. 그래서 이데올로기와 그것의 추구자 사이에는 특별하고 구체적인 선택의 동기와 이해 관계가 개입하게 된다. 작가에 의해 '괴상한 병'으로 불리는 이데올로기라는 병균은 매우 신속하게 전파되며, 일단 감염되면 누구든 맹목적인 숭배자가 된다. 그 이데올로기로 말미암아 "기계적인 사고 체계가 정신과 현실 사이에서 마치 스크린처럼 높이 오르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며, 눈을 멀게 한다." 따라서 <코뿔소>에서처럼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들며, 인간들 사이의 세계관을 차별화시킴으로써 우정이나 사랑도 파괴한다. 



- 156쪽

... 역사는 이데올로기 앞에서 처참히 쓰러진 나약한 지성의 모습을 증언해 주고 있으며, 폭력과 위력과 이데올로기의 승리로 장식돼 있다. 전체주의적 성향의 동물적인 힘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대열에서 낙오하는 자는 죽음이나 고독을 각오해야 한다. 코뿔소의 출현이 놀라움과 공포의 분위기를 던져 주었던 것은 한순간에 불과하다. 코뿔소에 의해 짓밟혀 죽은 고양이에 대한 분노와 몰이해는 일상적 삶 속으로 함몰되고, 합리화될 것이며, 오히려 잘 된 일로 간주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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