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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거리/책 읽기

[책] 호밀밭의 파수꾼, 인간 실격,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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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한 점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표지를 모아두고 보니 전쟁을 겪은 것과 관련있나 싶다. 책 내용에 전쟁은 별로 드러나지 않지만(데미안의 마지막 부분을 빼면) 책 출간연도를 보니 전쟁을 겪은 개인의 혼란과도 관련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데미안은 워낙 유명해서 청소년기에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읽은 적 없는 것 같다. 내용이 너무 생소하다.
- 셋에 내 취향 순서를 매긴다면 인간실격>호밀밭의 파수꾼>데미안 순이다. 데미안의 마지막 부분을 읽기까지는 좀 지루해서 그만 읽을까 싶은 순간도 있었다. 신과 종교 얘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그런가. 기독교의 자아 발견이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내가 이해하는 형태로 유추하면 뭔가 해탈을 추구하는 스님 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건이나 묘사 중심의 소설이 취향인 것 같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든지 이런 류의 책에서 재미를 느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끊임없이 고민하는 싱클레어의 자기 목소리가 지루했다. 사람의 취향은 다양하니까. 종교적 기반이 있는 사람들은 더 재밌게 읽을까 싶었다. 유럽책을 읽으려면 기독교와 관련한 문화적 배경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유교문화를 내재하고 있듯이 그들도 기독교문화를 내재하고 있겠지. 나에게 유럽은 자본주의 선진국, 예전에 제국주의 국가들, 뭐 이런 정치, 사회적인 개념인데 그들의 생활에는 종교적 바탕이 더 깊게 배어 있는 것 같다. 
- 데미안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기독교는 수천년의 종교이지 않나, 그러면 수천년동안 사람들은 엄청나게 변했는데 종교도 변했겠지? 불과 20-30년 사이에도 결혼적령기가 10년은 늘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수천년 전의 기독교와 현재의 기독교가 어떻게 같은 기독교일 수 있을까? 신은 변하지 않을텐데 종교가 변했다면 수천년 전에 쓰여진 성경을 읽고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 간극을 어떻게 메꾸는 것일까?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를 거치면서 어떻게 하나의 종교가 계속 유지되는 것일까? 그 유일신이란 신은 동일한데 어떻게 저렇게 다른 사회제도 속에서도 신의 가르침이 동일할까? 보편적이라서? 보편적인 부분이야 있겠지만 수많은 모순이 존재할 것 같은데, 그것을 어떻게 의문을 가지지 않고 극복해서 종교를 믿을 수 있지? 종교는 믿음의 영역이니까? 이해가 가지 않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지? 
- 천동설의 시대와 지동설의 시대에 같은 종교를 믿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데미안을 읽으면서 이런 종교와 그 종교를 믿는 인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역시 나에게는 데미안은 너무 종교적인 책이었나 보다.
 
- 호밀밭의 파수꾼은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는 영화를 본 거랑 헷갈린 것 같다. 제목이 비슷한가? 다시 생각해보니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긴 읽었던 것도 같다. 아무튼 읽었든 읽지 않았든 민음사 유투브에서 책 내용 소개를 들었을 때 내가 알던 내용이 아닌데 싶었다. 나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내용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일랜드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 그런데 청소년의 성장 스토리라니.
- 민음사 유투브 소개 내용 중에 기억나는 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의 철부지 행동에 짜증이 나면 어른이 된 거라는 증거라던가 뭐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짜증까지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공감도 아니었다. 무척 섬세한 아이라는 생각은 했다. 동생의 죽음이라든지, 학교 친구(?)의 죽음이라든지에서 고통과 부조리, 혼란 등을 겪는데 그것을 소화하기 어려운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지만 그걸 얻지 못할까봐 일단 비웃음, 조롱 등으로 방어막을 치고 나서 자신이 상처받더라도 정신 승리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아이. 그렇지만 끊임없이 사랑과 이해를 갈구하는 아이. 
 
-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그 다음으로 인간 실격을 읽었는데 오오바 요조에게서 홀든 콜필드의 모습이 보였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런 모습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홀든 콜필드는 그 이후로 살아남았을까?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자신을 조절(제어)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 인간 실격의 내용은 뭐 그럭저럭 예술가들의 삶인가 보다 하고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작가 연혁을 보고 매우 놀랐다. 세상에는 일정 비율로 이런 감성을 가진 사람이 태어나는 것일까. 최근에 읽은 양귀자의 소설 모순 속 아버지도 이런 사람 중 하나인가 싶었다. 예민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면 작품을 남기고, 예술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인간 실격자로 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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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은이),공경희 (옮긴이)
민음사
2001-05-30
원제 : The Catcher in the Rye (19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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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 새움 세계문학전집
다자이 오사무 (지은이),장현주 (옮긴이)
새움
2018-08-16
원제 : 人間失格 (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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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데미안 -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은이),이순학 (옮긴이)
더스토리
2020-08-20
원제 : Dem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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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미안 책 중에서

- 103쪽

    사감 선생님의 경고 편지를 받고 OO시에 온 아버지와 불시에 마주쳤을 때 나는 기겁했다. 그러나 그 겨울이 다 갈 무렵의 두 번째 만남에서 이미 나는 냉담하고 무심해져 있었다. 꾸짖어도, 당부해도, 어미니를 상기시켜도 나는 흘려들었다. 아버지는 격분해서,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불명예 퇴학을 시켜서 감화원에 넣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할 테면 하라지! 아버지가 돌아간 후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다니. 내게로 통하는 어떠한 길도 못 찾다니. 그러자 아버지는 실패해도 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장차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술집에 앉아 떠들어대는 이상하고 볼품 없는 방식이 내가 세상과 싸우는 방식이었고, 내 저항의 방법이었다. 나는 내 자신을 엉망진창으로 부수어가면서, 때때로 상황을 이런 식으로 파악했다. 만약 세상이 나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고, 더 좋은 자리와 가치 있는 일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우리야 자멸해버리면 그만이고, 손해야 세상이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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