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첫 두 페이지를 읽고 밀란 쿤데라에게 반했다. 미쳤는데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런 글을 쓰다니.
- 내가 반했던 첫 두 페이지를 옮겨본다.
# pp.9-11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14세기 아프리카의 두 왕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 와중에 30만 흑인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첨하게 죽어 갔어도 세상 면모가 바뀌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잔혹함이나 아름다움 따위는 전혀 염두에 둘 필요가 없는 셈이다.
이 전쟁이 영원한 회귀를 통해 셀 수 없을 만큼 반복된다면 14세기 아프리카의 두 왕국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도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렇다. 그 전쟁은 우뚝 솟아올라 영속되는 한 덩어리로 변할 것이고 그 전쟁의 부조리는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영원히 반복되어야 한다면,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프랑스 역사의 자부심도 덜할 것이다. 그런데 역사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 피투성이 세ㅜ얼조차도 그저 말분, 새털보다 가벼운 이론과 토론에 불과해서 누구에게도 겁을 주지 못한다. 역사 속에 단 한 번 등장하는 로베스피에르와, 영원히 등장을 반복하여 프랑스 사람의 머리를 자를 로베스피에르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영원한 회귀라는 사상은, 세상사를 우리가 아는 그대로 보지 않게 해 주는 시점을 일컫는 것이라고 해 두자. 다시 말해 세상사는, 세상사가 덧없는 것이라는 정상참작을 배제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사실 이 정상참작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심판도 내릴 수 없다. 곧 사라지고 말 덧없는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석양으로 오렌지 빛을 띤 구름은 모든 것을 향수의 매력으로 빛나게 한다. 단두대조차도.
얼마 전 나는 기막힌 감정의 불꽃에 사로잡혔다. 나는 히틀러에 관한 책을 뒤적이다 사진 몇 장을 보곤 감격했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을 전쟁 통에서 보냈다. 내 가족 중 몇몇은 나치 수용소에서 죽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죽임이, 되돌아갈 수 없는 내 인생의 한 시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 줬던 히틀러의 사진에 비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가?
이러한 히틀러와의 화해는 영원한 회귀가 없다는 데에 근거한 세계에 존재하는 고유하고 심각한 도덕적 변태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용서되며, 따라서 모든 것이 냉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읽는 중간인데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과 어울리는 부분이 있어서 급하게 옮겨본다.
p.287-288
중부 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오로지 범죄자들의 창조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인 진리를 어둠 속에 은폐하고 있다. 범죄적 정치 체제는 범죄자가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발견했다고 확신하는 광신자들이 만든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을 처형하며 이 길을 용감하게 지켜 왔다. 훗날 이 천국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광신자들은 살인자였다는 것이 백일하에 밝혀졌다.
그러자 누구나 공산주의자를 비난했다. 이 나라의 불행(가난하고 파산한 이 나라)과 독립의 상실(소련의 영향력 아래 놓인 나라)과 합법적 살인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당신들이오!
이런 비난을 받는 사람들은 대답했다. 우린 몰랐어! 우리도 속은 거야! 우리도 그렇게 믿었어! 따지고 보면 우리도 결백한 거야!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이 문제로 귀결된다. 그들이 몰랏다는 것이 사실인가? 혹은 그저 모르는 척한 것일까?
......
...... "난 몰랐어! 그렇다고 믿었어."라는 바로 그 말 속에 돌이킬 수 없는 그의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토마시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와 동침하는 줄 몰랐지만 사태의 진상을 알자 자신이 결백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자신의 무지가 저지른 불행의 참상을 견딜 수 없어 그는 자기 눈을 뽑고, 장님이 되어 테베를 떠났던 것이다.
8년 전에도 몰랐고 그 전에도 몰랐고, 지금도 몰랐다는 변명이 통하고, 다음에도 또 몰랐다는 해명으로 넘어가겠지? 지긋지긋하다.
'놀 거리 > 책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3) | 2024.12.19 |
---|---|
[책] 풀잎은 노래한다, 도리스 레싱 (1) | 2024.12.13 |
[책]한강, 내 여자의 열매, 여수의 사랑 (7) | 2024.10.26 |
[책] 채식주의자, 한강 (4) | 2024.10.13 |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0) | 2024.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