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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거리/책 읽기

[책] 잠수 한계 시간, 율리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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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클래식 68
율리 체 저자(글) · 남정애 번역
민음사 · 2014년 06월 27일

 
 
 
- 초중반은 지루했다. 역시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내 취향이 아닌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 여기도 폭력적인 상황에서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여성이 나와서 블랙박스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지독한 사랑을 표현하려면 여성은 폭력을 견디면서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 스릴러라고 했는데 물론 심리 스릴러라고 했지만 초중반엔 어디가 스릴러지? 싶었다.
 
- 그러다 중후반부터 욜라의 일기와 이 책의 화자인 스벤의 이야기가 많이 어긋나는 것을 느끼고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또는 용의자로 만드려고 욜라가 일기를 꾸며서 쓰는 건가 싶었다가 마지막에 이 이야기가 스벤이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를 대비한 진술서라는 것을 알게 되니 욜라와 스벤 중 누가 진실에 가까운지 모르겠는데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처음에는 당연히 욜라가 스벤의 진술처럼 스벤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쒸우기 위해 일기를 꾸며쓴 거라고 생각했는데, 
- 생각해보면 스벤의 진술과 스벤이 한 행동은 많이 어긋나기도 한다. 스벤의 진술에 의하면 자신은 이성적이고 무척이나 침착한 사람이어서 욜라와 성관계도 맺지 않았고 관계에 있어서도 거리를 두려고 했는데, 그런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생일 기념 잠수 모험에 욜라와 테오를 동행시킨다고? 테오는 굳이 필요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굳이 동행시킨 이유도 모르겠고. 자세히 따지고 보면 이상한 구석이 무척 많을 것 같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이 이야기가 스벤이 살인미수혐의로 기소되었을 때를 대비해 진술한 진술서라는 것으로 진실은 저 너머에... 뭐 그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야겠다.
 - 아! 스벤의 진술서에는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부분이 꽤 있다는 것. 그 부분을 욜라의 일기와 비교해보면 재밌을지도. 난 하지 않겠지만.


- 옮긴이의 글을 통해 이 책의 잠수 한계 시간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알았다. 율리 체라는 작가는 사회참여적인 작가인 모양이다. 그래서 문장에 가끔씩 사회에 대한 조소와 조롱이 있었나 보다. 일시적으로 사회를 외면하고 살아갈 수는 있지만 잠수 한계 시간이 있듯이 사회를 외면하는 시간에도 한계가 온다는 의미라니. 제목이 참 좋군.

 

 

### 책 중에서

# 48쪽

    시험 결과를 듣기 위해 두 시간 후 우리가 다시 그 방으로 불려들어갔을 때,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의 나 자신을 더 이상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복습 교재를 사기 위해 정말로 4000마르크나 썼으며, 매일 여덟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고, 매주 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모의시험을 연습했단 말인가. 겨우 이 얼간이들의 클럽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브룬스베르크 같은 사람들이 전권을 쥐고 있는 분야에 내 나머지 삶이 속하게 된다고 상상하자 토할 것만 같았다.

    그들이 그 비참한 시험에 대한 대가로 전체 성적의 반을 날려 버렸더라면, 내 삶은 어쩌면 그냥 그렇게 계속되었을지도 모른다. 화가 나서 두 번째 국가고시를 더 잘 보고, 어떤 사무국에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점수는 오히려 약간 더 좋아져 있었다. 하필이면 브룬스베르크가 나에게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었던 것이다....

 

# 140쪽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테오의 등장이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독일을 떠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나를 비겁하다고 말한단 말인가? 비겁한 것은 오히려 테오와 같은 사람들이다. 게임을 꿰뚫어 보았으면서도 게임을 계속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내 고객들로부터 들어 충분히 안다. 그들은 능력주의 사회를 욕하면서 자식들을 중국어 수업에 보낸다. 성장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면서 다음번 임금 인상을 위해 거리로 나선다. 경영자들의 욕심을 비난하면서 인터넷에서 가장 좋은 수익률을 보이는 주식을 찾아다닌다. 그들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제품 평면 텔레비전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토크쇼를 본다. 모두가 욕하면서 모두가 동참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역겹다.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은 결국 망가진 인간들뿐이다. 테오와 같은. 그는 그 부조리를 인식할 만큼 영리하므로 일은 더 악화되었다. 그가 나를 비겁하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사실 그가 나를 부러워함을 의미할 뿐이다. 

 

# 212쪽

    하지만 노인네가 나를 말렸다. 우리가 인명 구조대원을 찾아다니는 동안, 그는 아마 그 광경이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 멀리에서 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파도와 싸우는 동안, 절망한 관광객 두 명이 해변을 내달린다. 극단적이고 잔인하다. 키치가 될 위험은 없다. 누군가가 죽으면, 그것은 항상 예술이다.

...... 우리가 죽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뭣 때문에 난리를 치는가? 죽음을 대할 때면 모두들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사랑을 대할 때면 정반대다.

 

# 222쪽

    "우리가 커서 언젠가 이런 사람이 된다는 걸."이라고 테오가 말했다. "그런 걸 우리는 어렸을 땐 상상도 하지 않았지."

 

### 옮긴의 말 중에서

# 306쪽

    작가 율리 체는 이 작품에서 단순히 살인을 중심으로 한 스릴러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잠수'라는 메타포를 통해 그녀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관해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한다. 이 메시지는 스벤의 다음과 같은 고백에 압축되어 있다.

 

    "나는 망설였고, 의식을 읽고 물에 빠진 테오 얼굴을 쳐다보았고, 욜라를 생각했다. 그러고는 결정을 내렸다. 나는 테오를 심연으로 가라앉게두지 않았고, 그의 생명을 구했다. 그 결정에 대한 고마움에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 왜 내가 십사 년 동안 '개입하지 않다'는 개념을 그토록 매력적이라 여겼는지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추한 개념이었다."(287~288쪽)

 

    스벤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테오는 물속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개입했기 때문에 스벤은 테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개입하지 않는 것, 외면하는 것, 달리 표현하자면 '잠수'하는 것, '개인주의자'가 되는 것은 사람을 죽도록 내버려두는 일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다른 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잠수'하지 말 것, 외면하지 말 것, 사회적 변화를 위해 개입하기를 주저하지 말 것, 바로 이것이 작가 율리 체가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일 것이다.

    2014년 6월

         남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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