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남작
이탈로 칼비노 (지은이),
이현경 (옮긴이)
민음사
2004-08-10
- 흥미로운 소재였지만 그렇게 재밌진 않았다.
- 재미없진 않은데 소재의 독특함에 비해서는 재미있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기대만큼 재미있진 않았다.
- 어렸을 때 올라간 나무 위에서 죽을 때까지 내려오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라니. 정말 독특한 소재인데 그런 소재를 가지고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였다고 해야 하나?
- 나무 위로 올라간 사람이 거기서 새로운 세상이나 땅 위의 세계와는 또다른 세계를 만들 거라고 생각한 건가? 홍길동전의 홍길동처럼 이상향을 만든다거나 그런? 아니면 그 나무 위에서 천공의 성 라퓨타(천공의 성 라퓨타가 아닌가? 공중에 떠다니는 나무 여러 그루로 이루어진 마을 그런 게 나오는 게?)처럼 집도 짓고 가족을 이루고, 마을을 이루고 그런?
- 나무 위에서 산다는 것 말고는 평범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건가? 특별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결국 평범한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아니, 나무 위에 사는 것 말고도 평범한 삶은 아니다. 다만 그런 삶을 땅 위에서 살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아닌가? 나무 위에 살아서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일까?
- 남작의 삶 자체가 평범하진 않은데 내가 평범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도 계속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고 도움을 주려고하고 사랑도 하고 뭐 그런 것들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혼자 나무 위에서 살다 죽은 걸로 끝맺는 이야기여서 평범하다고 느끼는 건가? 뭐 때문에 평범하다고 느끼는 거지?
- 이 책을 읽으면서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생각이 났다. 약간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이지 않나?
- 이탈리아 작가인데 왜 멕시코 작가의 느낌과 비슷하지? 남미인 쿠바(쿠바가 남미 맞나? 중미인가?)에서 태어났지만 3살에 이탈리아로 왔다는데. 스페인어 문화권 뭐 이런 걸로 얽히나?
- 이 책을 다 읽고 <백년의 고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비슷한 느낌이 있다. 작가는 콜롬비아 출신이다.
- 궁금해서 지도 찾아봤다. 멕시코, 쿠바, 콜롬비아의 위치.
- 흥미롭지만 아주 재밌지는 않았던 책이었다. 두께도 좀 있어서 지하철에서 손에 들고 읽기에는 좀 무겁다.
### 책 속에서
- 뒷표지
Il barone rampante
보르헤스,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함께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대표작
- 174~175쪽
하지만 신부는 이 두 가지 성질 사이를 오가며 이제 코지모 형이 시작한 공부를 따라가는 데 하루의 시간을 모두 바쳤다. 그리고 암스테르담과 파리에 있는 서적상에게 주문할 책을 오르베케에게 알려주고 새로 도착한 책들을 찾아오기 위해 오르베케의 가게와 코지모 형이 있는 나무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신부는 자신의 불행을 준비해 갔다. 왜냐하면 옴브로사에 유럽에서 출판이 금지된 책을 모조리 가져다 읽는 신부가 있다는 소문이 교회 재판소에까지 들어갔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오후 순경들이 신부의 작은 방을 수색하기 위해 우리 저택에 나타났다. 그러더니 그의 성무 일과서 속에서 벨*의 저서들을 찾아냈다. (*Pierre Bayle(1647~1706):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평론가. 그의 저서 <역사와 비판 사전>은 정통 그리스도교 신앙을 파괴하도록 교묘히 꾸며진 주석이 달려 있다 하여 격렬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 책들은 아직 펴보지도 않은 새것이었지만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찰은 그를 체포해 갈 수 있었다.
구름이 많이 낀 그날 오후 벌어진 광경은 아주 슬펐다. 내 방 창문에서 놀라서 바라보았던 그 장면을 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그리스어 동사 변형 공부를 그만두었다. 이제 그리스어 수업을 다시 할 수 없을 테니까. 늙은 포슐라플뢰르 신부는 무장한 순경들 틈에 끼어 오솔길을 따라 멀어져 갔다. 그는 나무들이 있는 쪽을 올려다보았고 갑자기 떡갈나무 쪽으로 달려가 그 위로 기어 올라가고 싶은 듯 재빨리 움직였지만 그에게는 힘이 없었다. 그날 코지모 형은 숲으로 사냥을 갔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을 전혀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우리는 신부를 전혀 도와줄 수가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방 안에 틀어박혀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예수회 회원들이 독을 넣어놓았을까 두려워서였다. 신부는 계속되는 이단 행위 때문에 죽을 때까지 감옥과 수도원을 왔다 갔다 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무얼 믿었는지 몰랐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인가를 확고하게 믿으려 애쓰면서 신앙에 완전히 자신의 삶을 바쳤다.
- 377쪽 작품 해설
칼비노는 1923년 쿠바의 산티아고 데 라스 베가스에서 농학자였던 아버지와 식물학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년 뒤 그의 가족은 이탈리아 북부 도시 산레모로 이주했고, 칼비노는 스무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부모님이 알프스와 인접한 산레모의 저택에 화훼 연구소를 설립한 덕에 칼비노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 속에서 희귀한 식물을 접하며 자라났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의 전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 378쪽
... 초기에는 공산당 활동에 전념하며 현실 참여를 목표로 하는, 네오리얼리즘적 성격이 강한 작품을 썼다. 하지만 곧 공산당에 환멸을 느껴 탈퇴하였고, 네오리얼리즘만으로는 복잡해져 가는 현대 사회를 표현할 수 없다고 느껴 새로운 표현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 383쪽
... 시인 같기도 하고 탐험가나 혁명가 같기도 한 코지모의 일생은 비문에 적힌 "코지모 피오바스코 디 론도 --- 나무 위에서 살았고 --- 땅을 사랑했으며 --- 하늘로 올라갔노라."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나무 위에 올라가 세상과 거리를 지닌 채 현실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또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 남작은 바로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의 위치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현실을 외면한 채 독서에 빠져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산적 잔 데이 브루키 역시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코지모는 고집스럽고도 가혹한 의지로 복종하고 자신의 완벽성을 실현시켜 나감으로써 인간이 일반적인 사회의 규범과 관습을 거부하면서 자신만의 개성으로 이에 대항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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